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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물초보의일상

양저우차오판(扬州炒饭)에 대해서

by 주물초보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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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저우차오판(扬州炒饭)에 대해서

주말이라 늦잠 자고 일어나니 배가 출출합니다.

늦은 아침을 뭘로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양저우차오판(扬州炒饭)을 먹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역시 기대했던 바로 맛있고 든든하게 한 끼를 보탤 수 있었습니다.

양저우차오판은 계란볶음밥의 일종인데, 재밌는 역사와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전 중국에서는 계란 볶음밥을 쇄금반(碎金饭)이라 칭했는데, 금가루를 뿌린 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밥알에 계란 노른자가 덧입혀져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마치 황금으로 지은 밥 같다고 해서 생긴 별칭이라고 합니다.

7세기 초의 수나라 황제 수양제가 강소성 양주(扬州)에 순시여행을 다닐 때 수행했던 재상이 평소 자신이 즐겨먹던 계란 볶음밥을 만들어 바쳤고, 이를 먹어 본 수양제가 너무 맛있어 하며 금을 부숴 밥을 지은 것과 같다며 쇄금반이라고 요란을 떨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수양제와 연관되는 계란 볶음밥 이야기는 사풍이 썼다는 요리서 [식경()]에 바탕을 둑 있다고 합니다. 사풍은 수양제의 요리 책임자였다고 하는데 그 식경의 문헌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일부만 다른 문헌을 통해 알려져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수양제와 계란 볶음밥, 쇄금반 스토리는 식경에 실려 있었다는 음식을 토대로 여러 스토리가 덧붙여져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는 복건볶음밥, 새우볶음밥 등등 여러 종류와 형태의 볶음밥이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볶음밥의 바탕이 되는 것이 계란 볶음밥이고 또 그 원조이자 대표로 꼽는 것이 양저우볶음밥입니다.

노랗게 빛이나 그 볶음밥이 단지 맛있게 보여서 쇄금반이라고 칭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역사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7세기 초 중국에서는 쌀이 널리 퍼지지 못했었습니다. 당시 수나라 수도인 대흥(지금의 낙양)은 밀 농사 지역이었고, 벼 농사는 양자강 이남에서만 수확이 가능 했다고 전해집니다. 황제를 비롯해 당시 최고 권력자들도 쌀밥에 익숙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만큼 귀한 기름과 계란에 자주 접하지 못하는 쌀밥까지 곁들인 볶음밥이 당시에는 엄청 귀하고 고급 요리에 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계란 볶음밥이 문헌에 등장하게 된 시기도 이 때와 비슷한 것을 보면 지금 우리가 간단하게 먹는 계란 볶음밥이 당시에는 얼마나 귀한 음식인지 되돌아 생각하게 됩니다.

수양제의 강북과 강남을 잇는 대운하 건설과 맞물려 쌀과 같은 곡물의 이동과 벼농사의 확대가 이뤄짐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됩니다.

지금 중국에서 양저우차오판은 우리나라 전주비빔밥과 같은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입니다. 전주가 교통요충지로 변화하면서 타 지역 사람들에게 알려진 전주비빔밥과 같이 대운하 건설로 인해 양저우 지역이 교통의 요지로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되면서 계란 볶음밥의 명성이 널리 퍼지면서 현대의 양저우차오판이 탄생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의 현재 양주[양저우:扬州]는 계란 볶음밥의 명성과 달리 강소성[짱수성:江苏省] 하나의 작은 공업도시로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히 펌프제조사들이 엄청 몰려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여느 대도시와 같은 풍경은 기대하기 어렵고 수나라의 교통 요지이고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다는 역사적인 기록과 현재는 차이가 많이 있어 보였습니다.

물론 오래된 건축물들이 있고, 명승지들이 많이 있긴 합니다만, 더 이상 말을 하면 안될듯 합니다. ㅠㅠ

 

우리나라에도 맛있는 음식이 많고 역사와 문화를 지닌 요리들이 많이 있는데, 중국요리만 소개하고 그 역사를 공부하고 있으니 맛있는 우리 전통음식에 죄송한 마음이 많습니다.

우리 음식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꼭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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